오늘은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시 4편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생각의 힘, 매듭을 묶으며, 너의 어휘가 너를 말한다'를 소개할게요. 시를 읽으면 깊은 호흡을 하듯 마음이 뻥 뚫립니다. 우리 같이 읽어볼까요?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시 4편
오래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아껴있던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시 4편을 소개합니다.
♥저자 소개
저자는 시인이면서, 사진작가이고 혁명가 이다.
1984년 27살에 쓴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금서였는데도 100만 부가 발간되었으며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다. 1991년 군부독재 정권 하에서 사형을 구형받고 환희 웃던 모습은 강렬한 기억으로 새겨졌다.
무기수로 감옥 독방에 갇혀 침묵 정진 속에 광활한 사유와 독서와 집필을 이어가며 새로운 혁명의 길 찾기를 멈추지 않았다. 7년 6개월 만에 석방된 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감옥에서부터 30년간 써온 한 권의 책, 우주에서의 인간의 길을 담은 사상서를 집필 중이다.
시인의 작은 정원에서 꽃과 나무를 기르며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삶의 공동체 <참사람의 숲>을 꿈꾸고 있다.
♣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알려지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위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밤하늘에 별은 뜨고
계절 따라 꽃은 피고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의 일을 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의 길을 간다. (p82)
♣ 생각의 힘
생각이 있는 자는 어찌할 수 없다.
생각으로부터 인간의 길이 열리고
생각을 일으켜 모든 것이 시작되고
생각의 높이에서 그 존엄이 빛나기에
생각하지 않는 자, 생각 없이 사는 자에게는
그를 유혹하고 무릎 꿇릴 악마조차 필요 없다.
다들 사는 대로 휩쓸려가는 길에 던져져
이미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기에
어떤 경우에도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 자,
성찰하고 가슴치고 울며 다시 가는 자,
생각의 힘을 가진 자는 어찌할 수 없다.
생각한 대로 사는 자는 어찌할 수 없다.
아, 생각이 있는 자는 어찌할 수 없다.(p285)
♣ 매듭을 묶으며
짐 보따리는 단단히 묶어라.
매듭은 너무 꽉 묶지 말아라
풀 때를 생각해 날캉히 묶어라
사람살이가 그런 거다
다신 안 볼 것처럼
인연 줄 모질게 자르지 마라
언제 어디서 마주할지 누가 알 것이냐
인생살이가 그런 거다
그때그때야 일이 목숨 같다지만
지나고 나면 일은 끝이 없는 일들이고
결국은 사람, 사람과 사랑만 남는 것이니 (p288)
♣ 너의 어휘가 너를 말한다.
말은 쉽게 통하지 않는다
어떤 단어를 주로 쓰는가
어떤 어휘가 통하는 사람과
만나고 사귀고 일하는가
나의 단어가 나를 말해준다
나의 어휘가 나의 정체성이다
나의 말씨가 세상 한가운데
나를 씨 뿌리는 파종이다
저속하고 교만한 어휘는
나를 추락시키는 검은 그림자
진실하고 고귀한 어휘는
나를 상승시키는 빛의 사다리
어휘는 나를 빚어가는 손길이니
내 인생의 만남과 인연과 걸음마다
맑고 높고 간절한 어휘가 새겨진다면
그 문맥이 통하는 이들과 함께한다면
영롱한 이슬 맺힌 어휘로
새로운 말의 길을 열어간다면
결전을 앞둔 전사의 무기처럼
고요히 나의 어휘를 닦고 있다면
나의 말씨가 나의 기도이다
나의 글월이 나의 수호자다
나의 문맥이 나의 길이 된다
나의 어휘가 바로 나 자신이다. (p370)
'행복한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어 필사_ 1일차 (32) | 2023.12.18 |
---|---|
밥 프록터 '부의 확신'을 읽고 (0) | 2023.11.08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읽고 (2) | 2023.11.02 |
코스톨라니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13) | 2023.09.25 |
저스트.킵.바잉 을 읽고 (2) | 2023.09.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