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철학 수업'이 책은 단숨에 읽는 책이 아니라 차분히 생각을 펼쳐가며 읽는 책입니다. 이 책은 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라는 부제목으로 자유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삶을 위한 철학 수업'을 읽고
저자는 큰 고통이나 상처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대면할 작은 용기만 있다면, 새로운 삶의 기회가 되며 각자가 고통과 대결하면서 사람들의 삶은 크고 강해진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이 책에서 자유라는 개념을 철학은 물론 정치학, 사회학 및 문학이나 예술 등 많은 영역에서 반복하여 다루어져 있지만 자유는 언제 어디서나 피해 갈 수 없는 주제임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자유란 돈을 실컷 쓰는 게 아니라 돈으로부터 자유러워지는 것이며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능력과 결부된 것으로
우리 각자의 삶이나 행동의 방향과 연결된 어떤 힘이나 능력이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니체는 '최고로 자유로운 인간 유형은 최고의 저항이 끊임없이 극복되는 곳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조금이라도 높은 곳으로 오르려면 어떠한 저항을 극복하는 이들이 바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용기는 고통을 자유를 위해 넘어서야 할 저항으로 바꾸며 작은 용기와 더불어 자유를 향한 삶을 시작되며 이러한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 한 줌의 용기를 자극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단 한 번의 거대한 결단보다 더 어려운 것은 우리의 매 순간순간 마다 삶에서 자유로운 걸음을 걷는 것이며,
지금 여기에서 매 순간 진행되는 삶 자체를 내딛는 발걸음을 자유로운 삶으로 스스로 밀고 가는 법이고 그것이 철학을 통해 배워야 할 삶의 지혜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제1부 삶과 자유, 제2부 만남과 자유, 제3부 능력과 자유, 제4부 자유와 욕망으로 첫 번째 강의부터 스무 번째 강의 형식으로 읽기 편하게 쓰여 있다.
2. 자유를 위한 작은 실천
"내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나를 들여다본다"라고 니체는 말하듯이 심연은 내게 젖어 들어온다. p(23)
사건과 사고
우리에게 다가온 사건에 대항하여 삶을 애초의 방향으로 되돌려 놓으려 할 때,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다르지 않게 수습하려 하고 그로 인해 피할 수 없는 결과를 최소화하려 할 때, 그것은 사건이 아닌 사고가 된다.
반면 이 사건에 대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사고가 아닌 사건이 될 것이다.
즉 사건이란 어떤 문제로 발생한 곡절, 애초의 궤적에서 벗어난 이탈에 대한 긍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사고가 많은 인생은 그 사고의 수와 크기만큼 안타깝고 불행하지만, 사건이 많은 삶은 그 사건의 수의 크기만큼 풍요롭고 행복하다.
뜻밖에 닥쳐오는 일들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사고로 부정하는 이들에겐 삶의 필연적인 불행을 뜻하지만, 그것을 사건으로 긍정하는 이들에겐 삶의 필연적인 행복을 뜻하는 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리 삶에 어려움이 닥치면 어려움을 사고로 받아들이지 말고 사건으로 받아들인다면 조금 더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기적 같은 삶을 위하여
각자에겐 각자의 자유가 있다. 모든 자유와 행복은 자신의 현재, 지금의 몸과 지금의 조건을 출발점으로 한다.
그 몸과 조건을 자기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자유와 행복의 가능성은 시작된다.
자기 것이 되지 못하는 행운, 자기 것이 되지 못한 자산이나 남의 신체, 남의 능력을 부러워하는 한
우리는 결코 자유와 행복에 이르지 못한다. 자, 바로 여기서 시작하는 거야 (p 39)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는 삶이 쌓이면 기적이 우리에게 오지 않을까요.
'운명'은 얼굴을 바꾸어버린다.
혼자라면 하기 힘들었을 고통을, 내 삶 속에 피할 수 없도록 밀어 넣으며 다가왔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운명적인' 것이었다. 그것이 고통의 무게를 견디는 훈련을 반복하게 해 주었고, 그 훈련이 삶의 무게를 지고 가는 힘과 능력을 주었던 것 같다.
삶이란 어떤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 과정 그 자체가 목적이기에, 삶 전체를 걸고 어떤 것을 할 수 있다 함은 삶 자체와 대면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처럼 '운명적인' 삶과 대면한 모든 분에게 축복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p47)
삶의 과정 자체를 즐기며 우리 매 순간의 삶을 살아가면 저자의 말처럼 축복이 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기쁨의 윤리학
스피노자는 신체와 영혼이 나란히 간다고 주장한다.
신체에 힘이 넘치는 영혼이 우울해질 수는 없는 일이고, 영혼이 무언가에 짓눌려 침울 한데 몸에 힘이 넘칠 수는 없는 일이다.
똑같은 일에서도 사람마다 느끼는 기쁨과 슬픔의 정도는 아주 다르다. 누구는 작은 일에도 크게 낙담하지만,
누구는 '큰일'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두 사람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의 강도가 다르다면, 두 사람에게 발생한 힘의 증가와 감소 또한 다를 것이다.
그래서 웃는 것이 중요하다. 기쁘게 웃으면 역으로 웃으면 기뻐지기 쉽다.
웃음을 따라 힘의 증가가 발생한다. (p63)
감사해야 감사할 일이 많이 생기며 웃어야 웃을 일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늘부터 기쁨과 슬픔의 강도를 기쁘게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가처분소득과 가처분 능력
자신의 삶을 위해 '처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가처분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삶을 자유로운 삶을 창조하고 생산하는 능력, 이것이 실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p140)
지능의 차이
"우리는 모두 우리 안에 숨겨진 정원과 식물을 갖고 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분출하게 될 활화산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가까운 시간에 혹은 먼 후일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신조차" (니체_즐거운 학문)
'지능의 차이'는 우리가 갖고 있는 지적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우리가 사용한 지적 능력의 차이라고 말하는 게 차라리 더 정확할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말을 제대로 타지 못한다. 말이란, 타고 부리는 법을 익히지 못한다면, 편안히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조그만 의자만도 못한 것이다.
똑같이 말을 갖고 태어나도 그 위에서 춤을 추는 이도 있지만, 간신히 올라타는 이도 있는 것이다.
평등하게 주어져도 모두가 다르게 사용하고 다른 결과에 이르는 것이다. ( p176)
지능의 차이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적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사용한 지적 능력의 차이라는 점이 와닿는 글입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즐기면서 나만의 방법으로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며 읽는 문장입니다.
지적 능력의 차이는 부모나 신의 탓이 아니라 그걸 쓰지 않는 '각자의 탓'이라는 게 '지능의 평등'이란 명제의 또 다른 함축이다.
운은 나의 의지 바깥에서 오지만, 또한 내게 달린 것이기도 하다. 좋은 운이란 '준비된' 이에게만 온다.
자신에게 다가온 사태를 피하려 하지 않고 그것과 필사적으로 '대결함'으로써 그것을 자기 삶의 '사건'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가 아니라면, 그 사태는 없었어야 할 '사고'가 되어 우리를 지나쳐 간다. (p 177)
자신에게 주어지는 삶의 '운'을 믿고, 자신이 그것을 삶의 '사건'으로 만들 수 있음을 믿는 만큼 주어진다.
자신의 지적 능력을 믿는 만큼 주어진다. (p180)
우리 삶에 많은 문제들을 사고로 받아들이지 말고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의 근육을 만들려고 노력하며 운이 우리 곁에 다가올 때 그 운에 올라탈 수 있는 행운이 오지 않을까 생각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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